로제타석의 비밀, 상형문자 해독에 얽힌 경쟁과 실수의 역사

겨울 햇살이 창밖으로 길게 드리운 오후, 서재 한편에 오랫동안 꽂혀 있던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표지에는 나일 강 풍경과 피라미드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새겨져 있었다. 은퇴 후 시간이 남아돌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이 책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다. 처음엔 단순히 화려한 유물 사진이 좋아서 넘겨보기 시작했지만, 곧 나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남긴 문자 체계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특히 이집트 상형문자가 어떻게 해독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추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했다. 당시 나는 이집트라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정도만 떠올리던 평범한 중장년이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약 3000년 이상 나일 강 유역에서 번성했다. 그들은 거대한 기념비와 신전을 세우고 정교한 미라 제작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태양신 라(Ra)와 사후 세계의 지배자 오시리스(Osiris)를 비롯한 다양한 신들을 숭배했다. 그러나 이렇게 찬란했던 문명의 기록은 그리스·로마 시대를 거치며 점차 그 베일을 벗어 던지고, 이슬람 정복 이후에는 고대 이집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수천 년간 잠들어 있었고, 그것을 깨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로제타석이라는 검은 화강암 비석이다.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 프랑스 군인들이 로제타라는 작은 마을에서 요새 공사 중 우연히 이 돌을 발견했다. 로제타석에는 같은 내용이 세 가지 다른 문자로 적혀 있었다. 맨 위에는 신성문자라고 불리는 상형문자, 가운데에는 민중문자(디모틱), 그리고 맨 아래에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그리스어 대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실제로 문자의 비밀을 푸는 과정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물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 해독 작업은 처음에 영국의 물리학자 토마스 영(Thomas Young)이 시작했다. 그는 놀라운 다재다능함으로 신성문자와 민중문자가 같은 언어를 표기하는 서로 다른 문자 체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특히 파라오의 이름이 들어 있는 장면이 그려진 원형 테두리, 즉 카르투슈(cartouche)에 주목했다. 토마스 영은 그 안에 있는 글자들이 음가를 지닌다는 사실을 추측했고, 프톨레마이오스라는 그리스어 이름을 상형문자로 옮겨 적은 부분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상형문자를 모두 음절이나 음소 단위로 읽으려는 시도에 얽매여 전체 구조를 완전히 해독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의 접근 방식은 정확했지만 결정적 한 단계가 부족했던 것이다.

이후 프랑스의 언어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샹폴리옹은 어릴 때부터 콥트어를 포함한 여러 고대 언어에 능통했으며, 로제타석의 그리스어와 민중문자, 신성문자를 정밀하게 비교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토마스 영이 놓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상형문자가 단순히 그림 문자나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성 언어의 소리를 표기하는 체계라는 점이었다. 즉 일부 상형문자는 음절 또는 문자처럼 발음된다는 뜻이다. 그는 이집트 상형문자와 콥트어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냄으로써 단어의 발음을 복원할 수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당시 샹폴리옹이 람세스라는 이름의 카르투슈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실마리를 얻었다고 전한다. 치열한 연구와 경쟁 속에서 그는 수많은 실수를 거듭했지만, 그 실수들을 하나씩 교정해 나가며 마침내 상형문자의 해독 체계를 완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학자 사이에 벌어진 우선권 논쟁이다. 영국과 프랑스라는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에, 두 사람 사이의 경쟁은 상당히 격렬했다. 토마스 영은 샹폴리옹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도용했다고 생각했고, 샹폴리옹은 자신이 더 깊이 있고 과학적으로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 각자의 기여가 있었지만, 종합적인 해독의 완성도는 샹폴리옹이 앞서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이후에도 이집트 전역을 직접 탐방하며 수많은 비문을 수집하고 분석했고, 사후에 그의 형이 그의 연구를 정리해 고대 이집트어 문법서를 출판했다.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역사는 학문적 성취뿐 아니라, 인간의 집요함과 경쟁심이 어떻게 위대한 발견을 만들어 내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은퇴 이후 새 관심사를 찾던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단순한 취미를 넘어 깊은 탐구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스어 대본 하나를 실마리로 고대 사람들의 목소리를 되살려 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나는 이제 계절과 시간에 따라 탐구의 방식을 달리하며 이 지적 여정을 즐기고 있다. 봄날에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자 햇살이 따사로운 카페에 앉아 상형문자 쓰기 연습을 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박물관을 찾아 전시된 유물에 적힌 진짜 비문들을 눈으로 확인한다. 가을에는 장마철이 지나면 나일 강이 범람했듯 나도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 위해 관련 서적을 모아 읽고, 겨울 긴 밤에는 다큐멘터리와 강연 영상을 보며 따뜻한 이불 속에서 사후 세계 관념이나 미라 제작 과정 같은 흥미로운 주제를 되새기곤 한다. 특히 왕가의 계곡에 조성된 파라오들의 무덤 구조와 벽화에 담긴 신화적 상징을 이해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은 감상을 준다.

로제타석의 비밀을 푸는 과정은 단순히 고대 문자의 해독 이상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가 만나고, 때로는 충돌하며, 결국 하나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장면을 보여 준다. 상형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계층 구조와 신앙 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과 그 역사 탐구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확장할 수 있는 끊임없는 질문들을 던진다. 은퇴 이후의 시간은 단지 휴식의 시간이라기보다 또 다른 시작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석양 아래 스핑크스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책장을 넘긴다. 끝나지 않는 질문, 그리고 계속되는 발견의 즐거움이 내 시간을 풍요롭게 채워 주고 있다.